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의 대주교
부활절 메시지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다 하여도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네. 사람은 사나운 겨울 남풍속에서도 잿빛 바다를 건너며 내리 덮치는 파도 아래로 길을 연다네. 그리고 신들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무진장하며 지칠 줄 모르는 대지를 사람은 해마다 노새에 쟁기를 채어 앞으로 뒤로 쉴 새 없이 오가며 갈아엎고 못살게 군다네. 그리고 총명한 사람은 변덕스러운 새들과 야수들과 심해 속의 바다 생물들을 촘촘한 그물코 안으로 유인하여 잡아간다네, 사람은 또 산속을 헤매는 들짐승들을 책략으로 제압하고, 갈기가 텁수룩한 말을 길들여 그 목에 멍에를 얹는가 하면, 지칠 줄 모르는 들소를 길들인다네. 또한 언어와 바람처럼 날랜 생각과,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는 심성을 사람은 독학으로 배웠다네, 그리고 맑은 하늘 아래서 노숙하기가 싫어지자 서리와 폭우의 화살을 피하는 법도. 사람이 대비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 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하는 일은 결코 없다네. 다만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수단을 손에 넣지 못했을 뿐이라네. 하지만 사람은 고통스런 질병에서 도망치는 방법은 이미 궁리해냈다네.”(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위대한 고대 비극작가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비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죽음은 알 수 없는 신비의 어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인 수난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써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고린토 전15,26)인 죽음이 멸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희생 후에 죽음의 올가미에 잡혀 있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갇혀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베드로 전 3,19) 그리고 성 대 바실리오스께서도 “죽음의 고통들을 멸하시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이는 생명의 조물주께서 사멸에 묶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나이다. 그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고, 그로써 이미 잠든 이들 가운데 첫 열매요 죽음에서 태어난 첫 아들이 되셨으며 앞으로도 만물의 첫째가 되시리이다.”(성 대 바실리오스 성찬예배, 봉헌기도)라고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기쁘게 축일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들을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느님은 사람을 몸과 영혼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불멸의 영혼은 “질그릇”(고린토후 4,7) 같은 몸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몸이 죽음에 의해 깨지게 되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모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여 불멸하는 영적인 몸과 하나가 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고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첫 창조물들의 원죄의 결과인 자연적인 죽음은 사람을

생명의 원천에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지혜서 1,13)라는 말씀처럼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안식이 있을 뿐입니다.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요한 5,24)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사실 하나의 또 다른 탄생입니다. 하늘에서의 영혼의 탄생입니다. 죽음이란 부활하신 주님께서 깨워주실 때까지 잠들어 있게 될 육신의 상태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 인해 죽음은 멸망하였고, 더 이상 지배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40일 동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 네, 죽음으로 죽음을 멸하시고 무덤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베푸셨나이다.”라는 부활 찬양송을 매일 기뻐하면서 부르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의 사멸은 교회가 우리들에게 주는 중요한 가르침으로 신자들의 마음을 용기와 힘과 희망으로 가득하게 하여 삶에서 겪게 되는 어려운 순간들은 극복하고 항상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며 살아가게 해줍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일 투쟁은 죄에 대한 투쟁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영원한 영적 죽음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께서는 “죽음이 죄를 낳은 것이 아니라, 죄가 죽음을 낳았다. 죽음은 죄에 대한 약이다.(죽음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죄를 짓고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중단시켜주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형제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주신 영원한 삶이라는 큰 선물에 기뻐합시다. 부활의 기쁨을 우리들에게서 뺏어가는 죄를 멀리합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진심으로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합시다. 사랑의 제자인 신학자 요한 성인의 말씀을 항상 기억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 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요한1 3,14) 피시디아의 소티리오스 대주교와 사제들과 보제들 그리고 대교구의 종사자들 모두는 여러분들이 항상 꺼지지 않는 부활의 빛 안에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의 대주교



 

St. Paul Orthodox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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