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년회 일일 수련회 주제
정교회 성화
발표자: 요한 김상준

 





이콘이란

그리스어로 “형상” 혹은 “초상”을 의미한다. 이콘은 그리스어로 “닮는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성 대 바실리오스 성인께서는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이콘과 이콘이 묘사하고 있는 그 원형과의 닮음”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러므로 이콘에 입을 맞추고 때때로 절도 올리며 경의를 표하는 것은 목재나 석재나 금속재로 만들어진 물건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콘이 표현하고 있는 원래의 본질적 대상을 향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콘의 주된 역할은 인도하고 교육하는 데 있다. 신학자 파벨 예브도키모프는이콘은 이콘 안에 있는 거룩한 원형을 찾고 추구하는 인간을 그 원형을 향한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중략)…이콘은 단지 원형에 관한 이론이나 표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원형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현존과 연합이다.”라고 말한다.

이콘은 단순히 교회에서 사용하는 그림이거나 성서에 나오는 삽화이거나 종교적 열정을 표현한 예술작품인 것이 아니라 그려진 인물, 즉 원형과의 친교로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는 이콘을 통하여 세상의 것과 찰나에 불과한 것으로부터 눈을 돌이켜 하느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콘은 눈을 금식하게 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그것을 바라보고 묵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 참회와 깊은 신심으로 초대한다. 또한 신자들은 이콘을 통하여 성인들의 삶을 배울 수 있고 글을 읽을 수 없는 신자들에게는 교회의 가르침과 성경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시각적 자료이다. 이콘은 또한 색채로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이며, 또한 그림으로 표현된 신학 서적이기에 정교회 신학자들은 정교회의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이콘 작품의 연구와 분석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이콘은 우리 정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전례 생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제작

이콘을 제작할 때는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무 즉 보리수나무, 오리나무. 물푸레나무, 자작나무. 사철나무, 소나무, 너도밤나무, 플라타너스, 히말라야삼나무 등을 사용한다.

 목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베어낸 뒤 충분히( 2년 이상) 말린 나무를 사용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나무를 말려야 세월이 흐르며 이콘이 뒤틀리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뒷면에 홈을 파고 나무 빗장이나 손잡이 등을 덧댐으로써 이콘의 뒤틀림을 막을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그림을 그릴 부분을 1~5mm 깊이로 움푹 파서 가장자리가 약간 높은, 일종의 액자처럼 보이게끔 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가장자리가 장식처럼 보이게끔 하려는 심미적인 이유도 있지만, 보통 이콘 작가들은 이콘을 그릴 때 가장자리에 나무 막대를 대고 작업을 하는데, 이때 손이 미끄러지며 붓이나 물감이 팔에, 혹은 옷에 묻게 되어 더러워지거나 색칠한 부분이 팔 때문에, 혹은 옷 때문에 뭉개지거나 번지지 않게끔 하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한 목판의 표면을 칼이나 못으로 고랑이 지게끔 깊이 판다. 이 고랑은 아교풀이 목판에 잘 스며들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아교풀이 목판에 스며들면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하는 밑칠이 목판에 잘 엉기게 된다. 고랑을 파고냐면 이전에 언급한 대로 넓은 화필로 목판 표면에 아교풀을 칠한다. 한 번 바른 아교풀이 잘 말랐다면 다시 아교풀을 칠한다. 뒤이어 그물 같은 천을 아교풀이 칠해진 목판에 붙인다. 이 천이 목판에서 밑칠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천까지 잘 붙었다면, 다음으로 밑칠을 시작하는데, 하얀색의 석고나 석회를 아교와 섞어 여러 차례 얇게 펴 바른다. 석고나 석회를 칠한 부분이 다 마르면 그 위에 덧칠하고 또 덧칠한다. 이 과정은 7회에 걸쳐 계속 반복해야 하므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마지막 층의 칠이 다 마르면 사포로 가볍게 다듬어 밑칠된 부분을 부드럽게 다듬는다.

이제부터 이콘 작가들이 윤곽선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콘의 도안을 직접 고안해서 스케치하는 화가는 드물고, 대다수의 이콘 작가들은 오래된 이콘들을 보며 따라 그리거나, 오래된 이콘의 윤곽을 바늘로 뚫은 견본을 도안으로 사용한다. 이콘의 견본 위로 목탄 가루나 숯을 넣은 부드러운 무명 주머니가 견본의 뚫린 부분을 문지르고 지나가면 그리려고 하는 이콘의 윤곽이 점선으로 드러난다. 이때 날카로운 물건으로 석회로 밑칠한 부문에 윤곽을 새기면 그리면서도, 그리고 난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콘의 배경 부분을 칠한다. 배경은 금색이나 청색을 많이 사용한다. 이콘의 배경에는 다른 색이 섞여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콘 작가들은 배경을 먼저 칠하는데, 이때 이콘의 배경을 금색으로 하고자 한다면, 배경 부분에 얇은 금박을 입히게 된다. 이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인물이나 대상의 채색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제작 방법 이외에도 그리스에서는 부조로 된 이콘이나 성상을 만들었고, 작은 자갈들이나 유리에 색을 입힌 다음 밑칠한 판 위에 붙여서 모자이크 이콘을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18~19세기부터는 청동이나 놋쇠를 주조하여 그 위에 에나멜로 채색을 한 이콘들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이콘을 제작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작게는 휴대용 이콘에서부터 크게는 벽걸이용 이콘에 이르기까지 이콘의 크기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역사

초기 기독교 예술로서의 이콘은 로마 근교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카타콤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는데, 카타콤의 내벽에서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물고기와 십자가, 성서에 나오는 요나의 일대기와 선한 목자 이야기 등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유대교의 영향으로 기독교 예술에서도 인물화보다는 물고기나 십자가와 같은 상징물들이 많이 그려졌다.

본격적으로 이콘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이 나왔던 시기는 4세기 말 무렵부터이다. 이때부터는 성인들의 일생을 담은 그림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아주는 교육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목판에 제작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콘으로는 6세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되어 시나이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자 이콘”과 콥트 교회에 기원을 둔 “그리스도와 성 메나스” 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이콘(성화·성상) 파괴 논쟁

이콘은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선포된 후 오랜 시간이 흐르며 그리스도교 신학계에서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으로 표현해서 경배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대두되었고, 691년과 692년에 걸쳐 개최되었던 퀴니섹스툼(트룰로) 공의회에서는 일단 그리스도를 어린 양으로 묘사하는 것을 규제하기로 했다. 뒤이어 비잔틴 제국의 레오 3세 황제는 726년 이콘 공경 찬성파의 주장들을 논박하기 시작하며 이콘과 이콘 공경 찬성파 세력을 제거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레오 3세 황제는 730년에 제75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즉위한 이콘 공경 반대파의 아나스타시오스의 동의를 얻고, 이콘 파괴에 대한 칙령을 반포하였다. 이 치열하고도 지리멸렬한 논쟁은 황제의 궁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던 그리스도의 이콘이 파괴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로부터 이콘 파괴 논쟁은 843년까지 계속되었고 동로마 제국의 국력이 쇠락하며 제국이 멸망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이콘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신자와 수도자와 성직자가 박해와 처벌, 심지어 순교까지 당해야만 했다.

지금부터 지리멸렬했던 이콘 파괴 논쟁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당대의 로마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오 2세와 후계자인 교황 그레고리오 3세 때에 이르러서는 교황이 황제의 칙령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규탄하며 오히려 황제가 이콘 파괴를 중지할 것을 명령했으며, 이콘 파괴를 멈추지 않는다면 황제와 황제의 조력자, 동조자 전원에게 파문에 처할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레오 3세의 아들코프로니모스콘스탄티노스 5세 치하의 동로마 제국에서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아니 그보다 더 극심하고 격렬하게 이콘 공경을 반대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는 754년 이에리아에서 자기와 뜻이 맞는 이콘 공경 반대파의 주교들로만 338명을 모아서 공의회라고 할 수 없는 공의회[1]를 열고 이콘을 공경하는 것은 사탄의 행위이며 새로운 우상숭배라고 선언하며 이콘을 제작하거나 간직하는 사람은 그가 설령 성직자이거나 수도자이거나 평신도이거나 상관없이 모든 직분을 박탈하고 파문하며 처벌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윽고 모든 교회에서 수많은 이콘들이 제거되고 파괴되었으며 벽화나 모자이크로 제작된 이콘 위에는 석회가 칠해지고 세속적인 풍경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성 요한 다마스커스의 수도자와 성 게르마노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를 비롯한 수많은 성인께서는 파문과 함께 추방당하셨으며, 이를 반대하고 저항하던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는 끔찍한 박해와 함께 순교를 당했고, 이콘 공경에 찬성하고 이콘을 숨기던 많은 수도원의 건물이나 부지나 재산은 전부 몰수당해 황제의 무기고나 창고 등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황제의 주도로 궁정의 관리와 고관들이 안식한 성인의 설교 기록이나 저서를 샅샅이 검열하며 혹여 이콘 공경을 옹호하는 내용이 있다면 전부 지우거나 소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콘스탄티노스 5세의 아들 레오 4세는 잠시나마 이콘 공경에 대해 조금 완화된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누군가 이콘 공경에 찬성하는 언행을 한다던가, 공개적으로 이콘을 공경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는 체포해 처벌하거나 처형하곤 했다. 그러다가 레오 4세가 사망한 후 그의 아내였던아테네인 황후이리니가 그의 어린 아들 콘스탄티노스 6세와 함께 권좌에 올랐고(780~790), 79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이셨던 성 타라시오스 성인의 도움으로 하드리아노 교황과 이콘 파괴에 관한 일치 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787년 가을, 2차 니케아 공의회(일곱 번째 세계 공의회)에서 350명의 주교들이 모여 754년에 열린 이에리아 공의회의 결정 사항을 배격하고 레오 3세 재위 이전과 같이 이콘 공경의 정당성을 천명하며 동시에 참다운 흠숭은 오직 하느님께만 합당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이콘 파괴 논쟁과 박해로 어지러웠던 교회는 27년간 평화로웠다가, 아르메니아 출신 황제 레오 5세가 754년 이에리아 공의회에서 선포한 결의(이콘 공경 반대)의 정당성을 다시 천명하였고 교회는 또다시 혹독한 박해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레오 5세의 박해는 그의 뒤를 이은 황제 미카엘 2세와 테오필로스까지 장장 30년간 지속되었다.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면, 이콘 공경을 방해하는 대부분의 공격은 사실상 교회의 고유한 영역, 즉 교회의 신앙과 교리와 전례 생활에 대한 세속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30년의 혹독한 박해는 테오필로스 황제가 사망한 후 그의 아내였던 테오도라 황후가 자기의 어린 아들인 황제 미카엘 3세의 섭정을 맡았을 때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되었다. 842년 제84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이셨던 성 메토디오스 성인의 주재로 열린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제7차 세계 공의회에서 정식으로 승인한 이콘 공경에 관한 교리를 재확인하며 이콘 공경 반대파를 완전히 정죄함으로 이콘 파괴 논쟁이 비로소 이콘 공경 찬성파가 승리했음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 승리를 경축하기 위해 843년의 사순대제 첫 번째 주일을 정교주일로 정하고 이날 이콘 파괴 논쟁에서 승리했음을 경축하기로 결의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정교회는 사순절의 첫 번째 주일을 정교주일로 지키고 있다.

 

이콘의 의의

이콘의 존재 자체는 성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 즉 성자 하느님의 성육신에 기초하며 성육신은 반대로 이콘, 즉 형상으로 확인되고 증명된다. 이콘은 하느님의 성육신이 공상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보여준다이콘이 바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신(육화하신)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신 증거이자 증명이다.

그렇기에 이콘을 공경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고백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진리라는 고백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시에 이콘을 공경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이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성 삼위의 두 번째 위격, 즉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육화)을 부정하는 것이고 이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은 다시 말해 하느님의 모든 섭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교회의 위대한 성인 성 요한 다마스커스의 수도자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나는 물질을 흠숭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물질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흠숭한다. 그분은 나 때문에 물질이 되셨고 물질로 살기를 원하셨고, 물질을 통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셨다.”

 

 

 

 


1. 성모 탄생 축일



성모 탄생 축일(9 8)

이 축일은 5세기 예루살렘 교회에서 유래한 축일로 알려진다. 정교회에서 9 1일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한 처음이자 교회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날이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기념하는 성모님의 탄생은 온 인류가 바라던 구원의 역사가 시작한 날이기에, 초기 비잔틴 전례에서는 이날을 모든 축일의 기원으로 여겼다. 또 이날은 6일 동안의 창조와 7일째 되는 날의 휴식, 그리고 그 뒤들 따르는 8일째 되는 날의 풍요함과 새로운 시작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만들어내신 새로운 안식일과 새로운 파스카의 예표를 나타낸다.

성모 탄생 축일 이콘을 보면 성모님의 어머니이신 성녀 안나께서는 산파의 부축을 받으며 침상에 앉아있고, 세 하녀가 성녀께 각각 생명을 상징하는 물병과 빵과 계란을 가져다주고 있다. 성녀 안나의 침상 아래에서는 한 하녀가 갓 태어나신 성모님의 목욕을 준비하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아기의 크기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분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후광과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글자가 그리스어 두문자로 표시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의 부모, 즉 예수 그리스도의조부모의 이야기는 정교회의 정경 76권에는 나오지는 않으나 예루살렘에서 전해오던 전승과 위경인 야고보 복음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부유하고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인 성 요아킴과 그의 아내 성녀 안나께서는 화목한 부부셨으나 성녀의 불임 문제로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셨다. 이 문제 때문에 주변에서 성 요아킴께 아내와 이혼할 것을 종용하자 성인은 성녀께하느님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함께 간구하자라고 말씀하시며 성녀를 다른 거처로 피신하게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한 천사가 요아킴과 안나에게 각각 방문해 하느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두 사람이 곧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성인께서는 기뻐하시며 성녀의 피난처로 달려가셨고, 성녀께서도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며 성인을 맞으러 나가셨고, 두 성인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하시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셨다.[2] 과연 불임이셨던 성녀께서는 정말로 임신하셨고 아홉 달 뒤에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마리아를 낳으셨다.

이 이콘은 우리에게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하신 것이 없다는 것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바뀐 성모님의 탄생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사랑과 기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 이콘을 보며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 계획이 정말로 위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안나의 임신은 구약에 나오는 불임인 여성들의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늙은 나이에 이사악을 잉태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불임으로 괴로워하며 성전에서 기도하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마리아의 사촌이자 요한 세례자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의 임신 이야기가 그러하다.

 

2. 십자가 현양 축일)

이 축일은 콘스탄티노스 대제의 어머니인 성녀 엘레니 모후께서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달리셨던 십자가를 발견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성녀 엘레니께서는 324년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 만 하루간 묻히셨던 무덤과 그리스도께서 매달리셨던 십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박혔던 대못 3개를 발견하셨다고 한다.

성녀 엘레니 모후께서 온 예루살렘을 두루 다니시며 십자가를 찾으셨는데도 십자가는커녕 십자가에 관한 단서조차 보이지 않아 포기하시려던 찰나에 풀로 뒤덮인 언덕에서 향기로운 풀 한 포기를 발견했고, 그 아래를 깊이 파보니 그리스도와 그분과 함께 못 박혔던 죄수들의 십자가까지 모두 3개의 십자가가 나왔다. 이때 어느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인지 모르셨던 성녀께 한 신하가병자에게 십자가를 만져보게 하자, 만약 병이 나으면 그 병자가 만진 십자가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일 것이다라고 간언하며 병자 셋을 불러 각각의 십자가를 만지게 했더니 세 병자 중 두 명이 나았다.

병이 낫지 않은 병자가 만진 십자가가 좌도(왼쪽 강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아신 성녀께서는 곧바로 그 십자가를 불태우셨지만[3], 아직 어느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인지 알아내지 못하시던 중에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신 성녀께서 곧바로 그 행렬을 멈추시고 관을 들고 와 각각 두 십자가에 올려놨는데, 한 십자가 위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바로 다른 십자가 위에 올려놓으니 죽었던 사람이 부활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은 성녀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예루살렘 주교 성 마카리오스와 함께 온 예루살렘을 행진하시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신 후 마카리오스 주교에게 십자가를 전달하셨고, 2년 뒤인 326년에 콘스탄티노스 대제께서 9 13일에 십자가를 찾은 자리에 부활을 기념하는 성당(성묘교회)을 세우시고, 그다음 날인 9 14일에 거룩한 십자가를 현양하는 의식을 거행하게 하셨다.

614년 한때, 로마-페르시아 전쟁을 겪으며 예루살렘을 침공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장군 샤흐르바라즈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빼앗겼으나 628, 니네베 전투에서 승리한경건한 황제이라클리오스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되찾아오며 거룩한 십자가를 현양하는 의식을 다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황제의 마차에 십자가를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한 이라클리오스는 629 9 14,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황제의 신발과 황제의 옷을 맨발과 검소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차에서 내린 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성묘교회를 향해 행렬한 뒤 예루살렘 총대주교 자카리아스에게 십자가를 전달했고, 총대주교께서 성당 중앙의 암본(설교대)에서 십자가를 높이 세우시자 십자가 현양 행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지금 우리도 잘 아는 십자가 찬양송, "주여,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주의 후사에게 강복하시고..."를 소리 높여 불렀다. 여담으로, 현재 경기도 가평에 있는구세주 변모 수도원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못 박히셨던 십자가의 보목이 모셔져 있다.

 

3. 성모 입당 축일(11

성모 입당 축일은 교회의 오래된 축일 중 하나로 7세기부터 교회에서 기념하고 있는 축일이며 성모님 당신께서 가지고 계셨던 모든 것을 스스로 하느님께 봉헌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모 입당 축일 이콘을 보면, 중앙에 있는 성전의 제대 안에서는 성모님의 봉헌이 거행되고 있으며, 이콘 왼쪽 위를 보면 성전에 봉헌되신 성모님께서 천사로부터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천상의 빵을 받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모님의 성전 입당에 관한 이야기는 성서에는 나오지 않으나 교회의 전승을 통해 확인되고 전해져 내려온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으시고 태어나셨기에 지혜의 발달 속도가 일반인과 달라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발적으로 자기를 하느님께 바치셨고, 4년 후, 일곱 살이 되시자마자 부모의 허락을 받아 자신을 성전에 봉헌하셨다고 한다. 즉 어린 성모님께서는 세 살 때 이미 하느님께 일평생 동정으로 살며 자기 영혼과 육신을 하느님께 기꺼이 바치시기로 하시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으시고 태어나셨기에 지혜의 발달 속도가 일반인과 달라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자발적으로 자기를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결심할 수 있으셨고, 일곱 살이 될 때는 이미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실 수 있으실 정도로 성숙하게 성장하셨다는 전승에 근거해 이콘에서 어린 성모님을 묘사할 때는 성모님의 키는 작게 그리되, 성모님의 모습을 어른의 성모님과 똑같게 그린다.

4. 주 예수 그리스도 성탄 대축일(12 25일)

참 하느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사건은 마태오의 복음서[4]와 루가의 복음서[5]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6]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토가 제국의 모든 지역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을 때, 그리스도를 임신하신 성모님께서는 성 요셉과 함께 호구 조사에 참여하시려 성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내려가신다. 베들레헴에 내려가 계시는 동안 출산의 기운이 다가오자, 성 요셉께서는 동네의 모든 여관을 수소문하시며 성모님께서 출산하실 수 있을 곳을 찾지만, 호구조사 때문에 방을 구할 수 없어 한 여관의 마구간으로 성모님을 모셨고, 성모님께서는 거기서 한 아기를 낳으신다. 죄로 가득한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 참 하느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빛으로 내려오시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묵상할 때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여관 주인들의 모습이다. 교회는 성서의 말씀을 통해 여관에 방이 없다는 이유로 성모님과 성 요셉에게 방을 빌려주지 않았던 여관 주인들의 모습으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인 유대인이 오히려 하느님의 품을 떠나 어둠과 거짓을 사랑하고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과 진리로 이 세상에 오셨음에도 저마다 사랑하던 어두움을 잃기 싫어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깨달으려 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업신여기고 배척했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결코 유대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성탄 대축일 이콘을 보면, 중앙에 여관에 딸린 마구간이 바위로 된 산으로, 내부는 완전한 칠흑을 상장하는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당시 유대인의 실제로 자연의 동굴을 마구간으로 사용하는 풍습을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으셔서 고통스러웠던 세상의 모습과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아 어두웠던 세상과 그럼에도 빛보다 어둠을 사랑했던 인류의 모습[7]을 상징한다. 또한 왼쪽 아래를 보면 성 요셉께서 바위에 앉아 턱을 괴신 채 고뇌하고 계시는 모습을 본 한 목동이 성 요셉에게 조언하고 있다.[8] 왼쪽을 보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빛나는 별을 따라 그리스도께 경배하러 동굴로 올라가고 있으며 동방박사의 위에서는 천사들이 기뻐하며 찬양하고 있다. 이를 본 목동들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한 목동은 천사에게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직접 듣고 있다.

 하얀 천에 감싸여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그리스도의 모습은, 마치 수의에 감싸여 석관에 누운 시체의 모습처럼 보이는데,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바로 그 순간부터하느님의 어린양[9]으로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해서 희생당하시고 묻히셔야 할 사명을 가지고 계셨음을 나타낸다. 구유 뒤편에는 소와 나귀가 있는데,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계시[10]를 상기하게 한다.

 

5. 주 예수 그리스도 신현축일(1 6)

고대에는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리스도의 탄생과 동방박사의 경배와 함께 1 6일에 기념했으나, 4세기부터 성탄을 12 25일에 따로 기념하기로 하면서 1 6일의 축일은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는 의미만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는 이 날은 신현축일 성가의 가사에도 나오듯, 그리스도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임재하셨던 것 역시 기념하므로 이 축일을 신현(하느님께서 나타내심)축일이라고 한다.

이 이콘은 마태오의 복음서[11]와 마르코의 복음서[12]와 루가의 복음서[13]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신현축일 이콘을 보면, 중앙의 세차게 흐르는 요르단강 한가운데에 그리스도께서 서 계시고 당신의 오른손으로 요르단강을 축복하신다. 요르단강물 속에는 물을 이용하는 악마들이 각각 옷을 반만 걸친 채 용 위에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과 항아리를 든 반라의 남자로 그려져 있는데, 이 둘은 각각 홍해와 요르단강을 상징하는 것으로 시편의 구절[14]을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그려진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으실 때 비둘기 모양으로 임하신 성령 하느님과 하늘의 큰 음성은 그리스도 당신께서 바로 하느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보내신 구세주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참된 진리의 말씀이심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오른편(이콘 왼쪽)에서는 성 요한 세례자께서 한 손으로는 그리스도께 침례를 베푸시며 다른 한 손으로는 기도를 올리시던 중, 하늘에서부터 비둘기의 모습으로 내려오시는 성령 하느님을 보고 경외하고 계신다. 왼편(이콘 오른쪽)에서는 천사들이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겉옷으로 두 손을 가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기도 하고, 수건을 들어 주님의 몸을 받을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 요한 세례자의 발치에는 나뭇가지 사이에 걸쳐있는 도끼를 볼 수 있으며, 이 도끼는 마태오 복음서[15]에서 성 요한 세례자께서 유대 백성에게 선포하신 준엄한 경고를 상기하게 한다.

 

6. 주 예수 그리스도 입당 축일(2 2)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지 40일이 지났을 때, 성모님과 성 요셉 성인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성전에 봉헌하기 위해 올라간다.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때에 하느님께서 도우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이 이집트에 내려진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이 이콘은 루가의 복음서[16]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지성소의 닫힌 문은 성모님의 동정을 상징한다. 온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안아 든 시메온의 눈빛은 경외와 기쁨으로 가득차있고그의 두 다리와 몸은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신성의 무게를 버티느라 살짝 굽어있으며, 두 손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겉옷을 써서 가렸다.

성 루가 복음사가는 시메온이 죽음을 앞두고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한 기쁨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고 기록하며 그 기도를 복음서에 적어놓았고, 오늘날 우리는 만과에서 이 기도를 들을 수 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17]

 

 

7. 성모 희보 축일(3 25)

이 이콘은 루가의 복음서[18]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이콘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와 성모님께서 등장하는데, 가브리엘 천사께서는 왼손에 천상의 사자로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봉을 들고 계신 채로 오른손을 성모님을 향해 내밀며 마치 친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듯 인사[19]를 건네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갑작스러운 가브리엘 천사의 등장과 그분께서 전하시는 소식에 몹시 당황하시고는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20]하며 곰곰이 생각하신다. 그렇게 잠깐 고민하시고는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21]라고 반문하시듯 오른손을 펼치고 있다.

이후 가브리엘 천사께서는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22] 라고 말씀하시며 성모님보다 한참 더 나이가 많던 엘리사벳이 수태했다는 소식과 함께 하느님께서 가지고 계신 불가능이 없는 권능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시자, 성모님께서는 그 즉시로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23] 라고 말씀하시고 가브리엘 천사께서 전하신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셨다.

성모 희보 축일 이콘은 그 자체로 이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위대한 신비에 공헌하신 성모님의 믿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이며 정교회에서 이콘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에 관한 대답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8. 성지주일(주 예수 그리스도 부활주일 직전 주일)

성지주일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수난과 고통에 동참하며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 계획의 완성을 기다리는 사순절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수난당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던 일련의 과정을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동참하는성대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축일이다. 그렇기에 성지주일과 성지주일에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이미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부터 이콘을 제작할 때 자주 사용하던 중요한 주제였다.

이 이콘은 모든 사복음서[24]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앉으신어린 나귀는 일찍이 구약 시대의 즈가리야 선지자의임금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다.”라는 예언[25]을 상기하게 한다. 나귀를 타신 그리스도의 뒤로는 제자들이 따라오고 있으며, 앞에서는 많은 유대인들과 어린이가 겉옷을 벗어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실 길 앞으로 깔고, 귀하고 높은 신분의 인물을 환영할 때 쓰는 유대인들의 풍습대로 종려나무의 가지(빨마 가지)를 흔들며 환희와 기쁨을 한껏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입성을 환영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등지고 서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시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부정하던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의 율법 학자와 대제사장이다.

성지주일 이콘은 신자들에게 수난의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영원한 생명을 얻길 바란다면, 우리도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9. 주 예수 그리스도 부활 대축일(성 대 토요일 밤~부활주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셔야 했던 비극은 이제 하느님께서 오래전부터 계획하셨던 구원 계획의 최종장인 부활이라는 기쁘고 위대한 기적으로 이어진다.

이날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성대한 축일이며 부활주일로부터 승천 대축일까지 장장 40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기념된다.

이 사건 역시 사복음서[26]에 다 기록이 되어있다. 이 이콘은무덤으로 내려가신 그리스도라는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이콘은 베드로의 첫째 편지[27]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 지옥으로 내려가셔서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살다가 죽은 모든 영혼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부활 대축일 이콘을 보면, 중앙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평소에 입으셨던 빨강과 파랑의 조합이 아닌 순수한 황금색[28] 옷을 입으셨는데, 이는 참 하느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을 묶고 있던 죄의 사슬을 끊어내시고, 승리하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베푸시는 영광의 왕이시라는 것을 상징한다.

영광의 왕으로 무덤으로 내려가신 그리스도의 발에는 부서진 관과 흐트러진 뼛조각이 널브러져 있는데[2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산산조각을 내시고 승리하셨다는 것을 상징한다.

영광의 왕의 그리스도의 뒤편에서는 장차 오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하느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분투하셨던 성 요한 세례자와 성 다윗 예언자를 비롯한 수많은 성인들이 이 위대한 승리를 목도하고 기뻐하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손목을 붙잡으시고 관에서 일으키시는 두 사람은 각각 아담과 하와로, 이 두 사람은 온 인류에게 들어온 죄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본성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죽은 모든 죄인을 상징한다. 아담과 하와의 뒤편으로 아벨과 함쩨 단 한 번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베푸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러 달려오고 있는데, 이는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지만 한 사람의 올바른 행위로 모든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고 길이 살게 하셨으며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셨다.”라는 성 바울로 사도의 편지[30]를 상기하게 한다.

 

10. 승천 축일(주 예수 그리스도 부활 대축일 직후로부터 40일째 되는 날)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며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는 명령[31]을 남기시고 하늘로 승천하신다. 이 부활의 장면은 마르코의 복음서[32], 루가의 복음서[33]와 사도행전[34]에 기록되어 있는데, 특별히 승천 축일 이콘은 사도행전의 말씀을 주제로 그려진다.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이 땅에 내려오실 것을 말씀하시며 제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주시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분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승천 축일 이콘을 보면, 중앙 위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황금색 옷을 입으신 채 무지개 위에 앉아계시고, 창조되지 않은 빛과 영광을 상징하는만돌라가 원의 모양으로 그리스도를 에워싸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에워싼 만돌라를 천사들이 양옆에서 떠받들고 있는데, 이는 참 하느님이시면서 참 사람으로 오셔서, 죽음을 죽음으로 멸하시고 승리하심으로 온 세상에 구원과 생명을 베푸신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영광의 왕이시며, 동시에 이 영광의 왕께서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실 심판자시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왼손에는 하얀 두루마리가 들려 있고, 오른손으로는 아래에 있는 사도들을 축복하고 계시는데, 이는 두루마리로 표현된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을 당신의 사도들에게 베풀어 주셨음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아래에는 주님의 승천을 바라보고 놀라며 경외하는 사도들과 함께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그 모습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35]을 묘사한 것이다.

승천 축일 이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이 이콘에 성모님과 성 바울로 사도가 등장하는데, 사실 성서에서는 성모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던 그때 그곳에 함께하셨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성 바울로 사도는 이때만 해도바울로라는 이름이 아닌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계셨으며,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시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계셨다. 그럼에도 이콘 작가들은 이 두 분을 승천 축일 이콘에 그려 넣었고, 다른 이콘에서도 시간대가 맞지 않는 인물을 함께 그려 넣었는데, 이는그리스도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으신 온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상징한다.

 

11. 오순절(승천 축일 직후로부터 10일째 되는 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열흘 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성령이 사도들 위에 내려지셨다.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는 사도행전[36]의 말씀은 마태오의 복음서[37]에 나오는 성 요한 세례자의 말씀을 상기하게 한다.

오순절 이콘을 보면, 사도들의 머리 위에 혀 같은 불길이 갈라지고 있다. 왼쪽에서는 성 마태오 복음사가가, 오른쪽에서는 성 바울로 사도와 성 요한 사도가 성서를 손에 들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이 사도들에게 성서를 기록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을 상징한다. 다른 사도들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도에게 베풀어 주신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맨 아래에 검은색으로 칠해진 공간에는빨간색 옷과 황금 왕관을 쓴 한 왕이 열두 개의 두루마리를 담은 천을 들어 올리고 있는데, 검은색으로 칠해진 공간과 왕은 우주 혹은 만백성을 상징하고, 그가 들고 있는 천은 그리스도의 수의를 상징하며, 천 위에 있는 두루마리 열두 개는 그리스도께서 열두 사도들에게 베풀어 주신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왕이 서 있는 검은색 공간 주변으로 빛이 빛나고 있으며 그 빛은 사도들이 앉은 자리를 향해 뻗어가고 있다. 이 부분의 모든 요소를 하나로 합쳐서 보면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셨고, 그분의 승리 덕분에 성령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을 받은 사도들을 통해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셨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12.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변모 축일(8 6)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40일 전에 당신의 열두 사도 중 성 베드로 사도와 성 야고보 순교자 사도와 성 요한 신학자 사도만을 데리고 다볼산에 올라가신 후 제자들 앞에서 변모하셔서 당신의 신성함을 드러내셨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데리고 올라가신 제자들은 각각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상징한다.[38] 그리스도의 변모에 관한 성서 말씀은 마태오의 복음서[39]와 마르코의 복음서[40]와 루가의 복음서[41]와 그리스도의 변모를 직접 목격하셨던 성 베드로 사도의 둘째 편지[42]에서 읽을 수 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변모 축일 이콘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평소에 입으셨던 빨강과 파랑의 조합이 아닌 순수한 흰색 옷을 입으셨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신성함을 상징한다. 창조되지 않은 빛과 영광을 상징하는만돌라가 원의 모양으로 그리스도를 크게 에워싸고 있으며, 만돌라의 가운데에는 두 개의 사각형이 직교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변모하실 때 함께 나타나신 두 위격, 성부 하느님과 성령 하느님을 상징한다.

양옆 봉우리에는 성 엘리야 예언자(이콘 왼쪽)와 성 모세 예언자(이콘 오른쪽)가 서서 그리스도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리스도께 경배하고 있는데, 불말이 이끄는 불수레를 타고 회오리바람과 함께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느님께로 올라가신 성 엘리야 예언자는모든 살아있는 사람, 광야에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다 모압 땅에서 안식에 드신 성 모세 예언자는모든 죽은 사람을 상징한다. 봉우리의 아래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볼산에 올랐던 성 베드로 사도와 성 야고보 순교자 사도와 성 요한 신학자 사도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만돌라를 보고 놀라 엎드려 떨고 있으며, 모든 사도가 혼비백산하는 가운데 그나마 그리스도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만이 간신히 고개를 들고 엉겁결에 여기에 초막을 세 개 짓고 그리스도와 예언자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43] 그리스도께 외치고 있다.

 

13. 성모 안식 축일(8 15)

성모님의 안식에 관한 기록은 정교회의 정경 76권에는 나오지는 않으나 교회에서 전해오던 전승과 여러 교부들께서 남기신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성모 안식 축일 역시 교회의 오래된 축일 중 하나로 5세기부터 교회에서 기념하고 있는 축일이며, 교회의 열두 대축일 중 성모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모 탄생 축일과 함께 각각 정교회 교회력의 시작과 끝을 차지한다.

성모 안식 축일 이콘을 보면, 성모님의 육신은 침상에 누워있지만 동시에 성모님의 영혼은 갓 태어난 아기로 묘사되어 그리스도의 양손에 들려있다. 승천하셨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의 왕으로 천사들과 함께 만돌라에 에워싸인 채 당신의 어머니셨던 성모님의 영혼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겉옷을 써서 양손을 가린 채 맞이하고 계신다.

성모 안식 축일 이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성모님의 영혼이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과 하늘을 상징하는 반구에 문이 열린 것처럼 그려져 있다는 것인데, 이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낳으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동시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당신의 피조물이셨음을 상기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있는 세라핌과 그 위에 있는 반원의 작은 만돌라 안을 보면, 두 천사가 문을 여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성모님께서 안식하심과 동시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래로 잠겨있던 낙원의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셔서 하느님의 품 안에 안기신, 다시 말해 처음으로 신화를 완성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상징한다.

모 안식 축일 이콘은 그리스도께서 겉옷을 써서 당신의 양손을 가리시고 성모님의 영혼을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맞이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며, 또 사도들과 사도들의 제자 주교들과 그리스도의 다른 제자들이 성모님의 육신에 분향하고 침상을 매만지며 성모님의 안식을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성모님께서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던 과정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장하던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셨는지, 그리고 어째서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모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다.



[1] 콘스탄티노스 5세가 공의회를 열었을 당시에 75대 총대주교였던 아나스타시오스는 이미 사망했으며 차기 총대주교는 아직 선출되지 않아 총대주교좌가 공석이었으나, 이를 무시한 채로 공의회를 열었다.

[2] 여기까지가 성모님의 탄생 장면 바로 뒷부분에 그려진 내용이다.

[3] 일부 전승에서는 성녀께서 십자가를 다시 땅에 묻으셨다고 한다.

[4] 마태오, 1:18-25

[5] 루가, 2:1-20

[6] 필립비, 2:6-7

[7]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요한, 3:19)

[8] 같은 축일과 같은 구도의 다른 이콘을 보면 성 요셉의 앞에 목동이 아닌, 거친 가죽옷을 입고 장발과 수염을 기른 고행자가 서있는데, 이는 악마가 그리스도의 수태와 탄생에 관한 불안과 의심을 불어넣어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변장한 것이다.

[9] 요한, 1:29

[10]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이사야, 1:3)

[11] 마태오, 3:13-17

[12] 마르코, 1:9-11

[13] 루가, 3:21-22

[14]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치고 요르단 강은 뒤로 물러섰으며(시편, 114:3)

[15]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마태오, 3:10)

[16] 루가, 2:22-38

[17] 루가, 2:29-32

[18] 루가, 1:26-38

[19]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가, 1:28)

[20] 루가, 1:29

[21] 루가, 1:34

[22] 루가, 1:35

[23] 루가, 1:38

[24] 마태오, 21:1-11, 마르코, 11:1-11, 루가, 19:28-44, 요한, 12:12-19

[25] 보아라, 네 임금이 너를 찾아오신다. 정의를 세워 너를 찾아오신다. 그는 겸비하여 나귀, 어린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시어 에브라임의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의 군마를 없애시리라. 군인들이 메고 있는 활을 꺾어버리시고 뭇 민족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큰 강에서 땅 끝까지 다스리시리라.”(즈가리야, 9:9-10)

[26] 마태오, 28:1-7, 마르코, 16:1-7, 루가,24:1-7, 요한, 20:1-10

[27]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몸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습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1베드로, 3:19)

[28] 혹은 순수한 흰색

[29] 같은 축일과 같은 구도의 다른 이콘을 보면 부서진 관 아래에서 한 남자가 전신이 포박된 채로 괴로워하고 있는데, 이는죽음이 그리스도에게 참패당해 능력을 상실했으며 더 이상 죽음이 인류에게 두렵고 고통스러운 존재가 아님을 상징한다.

[30] 로마, 5:9-21

[31] 마태오, 28:18-20

[32] 마르코, 16:15-20

[33] 루가, 24:50-53

[34] 사도, 1:6-12

[35] 사도, 1:10-11

[36] 사도, 2:3

[37]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마태오, 3:11)

[38] 성 베드로 사도가 믿음을, 성 야고보 순교자 사도가 희망을, 성 요한 신학자 사도가 사랑을 상징한다.

[39] 마태오, 17:1-9

[40] 마르코, 9:2-9

[41] 루가, 9:28-36

[42] 2베드로, 1:16-18

[43]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마태오,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