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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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사타의 주교)
축일
622


성인 찬양송 (음조 4)

사도직의 계승자로 선임자의 길을 따르며 하느님의 감화를 받이신이여, 당신의 수련방법은 거룩한 영상으로 향하는 길목이 되셨나이다. 순교수도사 메토디오스 성인이여,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셨서 참신앙을 위해 목숨을 받치면서 까지 투쟁하셨나이다. 우리 영혼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하느님께 중재하소서.
 

성인소개

에브도히아가 안티옥 주교좌에서 추방되자 이지방 아리안파들은 아르메니아의 멜레티오스가 자신들의 교리를 보장해 주리라 믿고 콘스탄티오스 황제에게 멜레티오스를 안티옥의 주교로 선임할 것을 간청하였고, 안티옥의 정교와 연계하여 멜레티오스의 선임장에 무명으로 함께 서명하였다 (212 참조).  문서는 사모사타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멜레티오스는 그의 정교 신앙이 입증되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실은 아리안파인 자신들의 고의적 배신죄가 입증되는 결과가 되므로 콘스탄티오스 황제에게 문서가 유세비우스로 부터 회수될 것을 요구했다.  황제의 사신들이 파견되자 유세비우스는 문서에 서명한 모든 이들의 동의 없이는 반송되는 것을 거부했다. 사실을 알게된 황제는 사신들을 다시보내어 협박까지 했다. 만일 문서반송을 거부할 경우 오른손을 짤아버리겠다고 협박하자 유세비우스는 양손을 내밀었다.  이를 알게된 황제는 그에 대한 두려움과 공경심을 갖게되었다.

사건은 콘스탄티오스의 마지막 해인 서기 361년에 일어났고, 그의 후예로 유리안 배신자가 되었지만 서기 363년에 사살되었다. 죠비안이 후계자가 되고, 서기 364년에는 바렌티니안이 죠비안의 후계자가 되자 자신의 친동생인 바렌스를 동방의 황제로 제위시켰으며, 또한 아리안파를 지원하게 되고 서기 374년에 유세비우스를 트라스로 추방시켰다. 어느 저녁 유세비우스의 추방령을 소지한 자가 도착하자 유세비우스는 그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하고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저택을 걸어 나갔다.  서기 378 아드리아노폴리에서 발렌스 황제가 사살되자 그의 후계자인 그라티안에 의해 유세비우스가 추방에서 돌아오게 되었다. 유세비우스 성인은 덕행과 정교 신앙의 소유자인 남자들을 성직자로 임명하고 시리아 교회를 맡게했다.

서기 380 유세비우스가 어느 마을의 성직자를 주교로 승좌시키기 위해 마을 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에 아리안파 여인이 진흙으로 만든 벽돌을 지붕위에서 던져 그의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했다. 사경을 헤메고 있던 성인은 주위 사람들에게 복수의 행위를 하지 말것을 요청하였다.  그레고리오스 신학자도 성인에게 여러 편지를 보내면서 성인의 기도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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