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그레고리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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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사의 대주교)
축일 1 월 30 일

성인 소개

그레고리 성인은 출중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성 대바실리오스의 동생이며 또 다른 형이 세바스티아의 베드로 대주교였고 누이동생은 7월 19일이 축일인 마크리나 수녀이다.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나신 그레고리오스 성인은 제국 내의 구석구석을 아름다운 부인 테오세비아와 함께 방문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내의 뜻밖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성인께서는 오로지 선교에만 온 힘을 기울여 믿음의 모범이 되셨다. 성인은 니사의 주교로 서품되었고 지적이고 덕망 있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이며 신학자인 아리우스는 ‘그리스도는 참하느님이 아니며 하느님 아버지에 의해 창조된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이단론을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간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지음 받았기 때무에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등하지 않으며 성부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아리우스의 추종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파괴하며 神-人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부정하였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성인께서는 아리우스의 거짓 이단으로부터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생명을 건 투쟁을 하였다. 아리우스파인 발렌스 황제가 374년에 집권하자 그는 아우리스 이단을 반박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간 그레고리오스 성인을 추방하였다. 그러나 성인의 유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발칸의 침입자에게 패한 발렌스는 전사하였기 때문이다. 니사의 주교직을 회복한 그레고리오스 성인은 아리우스 이단을 물리친 공로로 성 대바실리오스, 신학자 그레고리오스 성인과 더불어 교회의 존경받는 교부로서 기억된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2차 세계공의회(AD 381년) 는 오늘날 우리들이 암송하고 있는 니케아 신경을 완성하였다. 이 공의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이 니사의 그레고리 성인이셨다. 이리하여 교회는 분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교회의 승리이기도 했다.은 379년에 평화로운 가운데 안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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