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 신약성서 강해

마태오 복음서 6장


자선 방법(마태오 6 1-4)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말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6:1 6장에서 예수는 다음 3가지 영적수련 기본개념을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1)자선, 2)기도, 3)금식. 이 세가지 수련은 하느님께서 최상의 덕행으로 보는 행위이다.

6:2 위선자의 원래 뜻은 배우이다. 위선자는 연극각본에 총력하는 배우이다. 위선자는 하느님이 아닌 사람을 위해 거리나 성전회당에서 배역하는 자이다. 사랑의 마스크를 착용하고 행하지만 내적으론 냉혈이다. 그들 행위에 대한 보답은 사람의 박수이외에는 없다.

6:3, 4 남이 생각하는 것과 자아가 생각하는 것에 하느님은 무감각하다. 참된 자아를 하느님은 보신다. 행위는 물론 생각까지도 하느님은 알고 계신다. 모든것은 심판될 것이며 선행의 보상은 공개적으로 베풀어 진다.

 

기도 방법(마태오 65-14)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보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 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게서 들어 주시는 줄 안다. 8)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게 오게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6:5-8 위선자는 기도 본연의 자세인, 하느님과의 친교적이며 인격관계, 그리고 하느님 영광에 대한 비죤임(고린도 전서 2:9)을 알지 못한다.  위선자는 친교와 비죤을 가로 막고 있다.

빈말(7)은 그런 관계를 성립시키지 못하며, 하느님은 빈말을 원치 않으신다.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게되고, 겸손하며, 회개하는 것은 고요함과 언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항상(루가복음 18:1) 쉬지 않고(데살로니카 전서 5:17) 기도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언어로 하느님을 갈망하는 기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기도는 하느님께 강의나 요구한다기 보다는 첫째, 겸허(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6-), 둘째, 하느님과의 인격적이며 친밀한 관계(너희 하느님께 기도하라), 셋째, 성실성(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에 있다. 되풀이란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익숙한 시편, 찬송, 기도, 봉성서독이 사용하여 하느님을 영혼과 진실속에서(요한 4:23) 찬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형식은 절대 예수의 명령에 반하는 것이 아니며 헛된 말과 빈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다.

6:9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아들 관계는 하느님과 인간관계를 표현한다.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태어나 아들이 되시것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입양의 은총으로 창조주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 그리스도의 신성, 하느님의 아들처럼, 그리스도인도 하느님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봉사함에 친아버지께 하듯 하라는 것이다. 만물의 아버지상이라기 보다는 하느님 성령을 통하여 입양된 자녀가 갖는 친 아버지와의 관계를 하느님 아버지와 맺는 구원적이며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한다(로마서 8:14-16).

6:11 일용할의 그리스어원은 근원 혹은 원천을 초월하는이란 뜻이다. 일용할 양식은오늘 필요로 하는 식용품인 빵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의 존속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삶을 위한 빵을 의미하며, 영원한 생명 존속을 위한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근원적 빵을 의미한다. 이 빵은 하느님께서 천지창조때에 인간 영원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며, 죄로 말미암은 죽음을 멸할 생명의 빵을 의미한다. 하느님 나라를 우선 구할 것을 예수는 권한다. 단순히 육적인 건강을 위해 빵을 요구하지 말고, 영적인 양식인 성체성혈을 통해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 생명을 베푸는 살아있는 빵을 구하라는 뜻이다.

6:12 이웃을 용서하듯이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줄것을 간구한다. 복수격을 사용하여 우리모두 서로의 죄를 서로가 용서하면서, 하느님의 용서를 간구하라는 것이다. 비록 하느님의 용서하심이 우선이지만, 하느님 용서와 인간 용서가 상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웃에게 하듯이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하시도록 간구한다. 빚은 영적인 빚을 의미한다. 죄를 짓게되면 하느님과 피해입은 이웃에게 그에 대한 보상을 지게 되는 것이다.

6:13 죄사함만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는다. 유혹을 받지 않토록 기도한다. 하느님은 유혹하지 않으신다(야고보서 1:13). 유혹은 악마로부터 온다. 유혹은 육적욕망에 굴하여 영적폐배를 목적으로 한다(로마서7:5). 유혹은 필할 수없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유혹에 폐배하여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길 수있는 유혹(고린도 전서10:13) 이상의 것이 닥치지 못하게 기도한다.

6:14, 15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전 서로의 잘못을 용서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 예수는 이 사실을 되풀이하여 가르치면서, 용서하지 않은 종(18:23-35)의 비유를 들어 가르친다. 용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도 하느님은 용서하신다는 의견을 예수는 완강히 반대한다.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행위인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맺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음은 의도적으로 하느님의 용서와 무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금식방법(마태오 616-18)

16) 너희는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애처로운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금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금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6:16-18 금식중 슬픈얼굴을 하는 것은 이웃에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 동조를 얻기 위한 전시적 행위다. 예수는 이런 위선적인 행위를 금한다. 금식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육적인 고통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기쁨이 슬픔을 이긴다. 금식기간중에 행해지는 금식은 오히려 얼굴을 깨긋히 꾸며 기름으로 화장할 것을 정교회성가를 요구하고 있다. 금식은 식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육적인 금식은 영적인 금식과 동행한다. 영적인 금식은 죄스러운 욕망의 노예 쇠사슬에 스스로 얶메어 학대받지 않고 해방시키는 것이다. 금식은 하느님 영광을 위한 것이지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라(마태오 6 19-24)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그것을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그것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 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6:19-21 지상의 재물에 얶메인 것은 하늘나라의 재물과 등지게 하는 행위이다. 이는 노예생활이며 그리스도와의 자유로운 생활을 못하는 것이다. 사도적 생활은 지상의 재물고리를 풀고 참 보화인 하느님에게 고리를 잠가 거는 것이다. 재물의 필요성은 하느님의 뜻과 사명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6:22, 23 예수는 사물에 비교하여 지각적 인식을 일깨워 하느님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있도록한다. 빛의 필요성은 잘 알여져 있다. 눈이 몸의 등불이 되면, 마음은 영혼의 영적 눈이 된다. 이처럼 마음은 내적 인성 전체성을 밝힌다. 영적인 눈을 온전히 그리고 순결하게 잘 관리함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자세이다.

6:24 인간은, 노예가 두 주인을 섬기는 거와 같은, 지상의 것과 하늘의 것을 동시에 섬기려고 한다. 사실상 이러한 상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이유는 둘 다 한결같이 완전한 충성과 순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재물을 주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전적인 노력과 노고를 강요하기 때문이며, 재물 그 자체가 사악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것을 위해 하느님께 의존하라(마태오625-34)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 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 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구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게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같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6:25-27 심각한 고민, 사고적인 계획과 관리 결여는 금물이다. 육적건강과 인생은 음식, 음료 아니면 의복이라기 보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존되어 있다. 세상 물질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압적인 고민은 내적 불안정을 의미하며 연약하고 헛 신앙을 표출하는 행위이다.

6:32 이방인의 우상숭배는 세상의 염려에서 해방시키지 못하며, 이는 존재하지 않는 신, 즉 우상에 중점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6:33 하느님 나라는 예수의 가장 중심적인 가르침이며, 산상강론은 정의로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세상근심에서 해방될것을 요구하는 예수는 하느님 나라을 갈망하게 한다. 최후의 날에 들어가게 될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은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께서 필요로 하는 모든 축복을 충족하리 만큼 베풀어 주심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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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 나창규 (다니엘) 대신부

        성 바울로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