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 신약성서 강해

마태오 복음서 5장

산상 설교, 참된 사도들의 축복 (5:1-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 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 왔다. 예수게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 대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5:1 유대교 선생들이 가르칠 때 취하는 관례적 자세는 앉는 자세이다. 초대 그리스도 교회 지도자들도 (예를 들면 성 요한 크리소스톰) 평신도들이 서서 듣는 동안 앉아서 가르쳤다. 이 산상설교를 이해하다는 것은 가르치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선생임을 깨닫는 것이다.

5:3 행복하다는 뜻은 세속적인 행복이나 번영보다는 천상적이며 영적인 행복을 뜻한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난하다는 첫째, 물질적으로 가난한다는 것과, 둘째,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믿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마음으로 가난한 자는 겸손하며 자신를 낮추는 이로 믿음있는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진정한 영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다.

5:4 신성한 슬픔은 우리의 마음에 경계심을 심어주고, 절제를 터득하게 한다. 죄로인한 슬픔과 이웃의 고통에 슬퍼하는 것은 순수한 회개자요, 다음 세대에서 위로를 받을 자이다. 신성한 슬픔은 개종과 회개하는 자로 무한한 기쁨의 첫 열매를 맺는 자이다. 이는 무신론에서 얻는 기쁨과, 절망으로 이끄는 슬픔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고린도 후서 7:10).

5:5 슬픔은 분노의 불길을 무마시킬 수가 있고, 겸손한 사람으로 만든다. 겸손이란 영예와 불영예 상관없이 만족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11:29).라고 가르친 예수를 따르는 생활이다. 온유와 겸손자는 하느님께서 지도하는 사람으로 기도의 요청으로 하느님께서 분노와 욕망을 억제할 능력을 주신다.  미래의 축복을 언약한 예수의 말씀은 권력있는 자, 부유한 자, 폭군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온유한 자를 위한 것이다. 영원하고 새로운 세상를 상속받을 자이다.

5: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의로운 사람) 하느님과 그의 나라를 우선으로 이해하는 자이다 (6:33참조).

5:7 자비는 마음과 행위로 표현되는 사랑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사람들의 고통을 몸소 질머지시고 악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해방시키기고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게 한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5:8 깨끗하다 함은 그 어느 것과도 혼합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경배와 예배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성령의 도움으로 첫째, 온갖 덕행을 행하며, 둘째, 악한 마음을 전혀 품지 않고, 셋째, 절제의 삶을 살아간다.  이 세상의 일들에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고, 욕정에 얶메이지 않을 때에, 오로지 하느님만을 갈망하게 된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하느님의 영광에 집념하는 사람은 (고린도 후 3:18) 하느님 외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5:9 평화의 근원이신 예수는 피를 흘리는 것외에는 평화를 위해 그 어떤 지불도 찾을 수 없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자(이사야 9:6, 에페서 2:14, 16), 화해자로서 우리에게 나타나게 한다. 하느님 성령은 그리스도를 따르며 묵상하는 자에게 하느님 현존을 깨닫게 하고 평화를 주신다. 평화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가져오며, 모든 창조물과의 화해 그리고 자신의 성화를 갖다준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이웃과 하느님의 평화를 나누는 자며, 하느님 외아들의 사역에 참여하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자이다.

5:10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진리를 수호하며 세속적인 길을 걷기를 거절한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주의를 주지 않는다 (6:24, 33, 고린도 전 6:19, 20). 정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은 예수처럼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정의로운 자를 위해 기다리는 월계관이기 때문이다.

5:11, 12 박해를 희망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며 일치되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예언자, 성인 그리고 순교자의 길을 걷는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겪는 고통에서 오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뜻한다.

 

세상에 있는 사도들 (마태오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생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5:13-16 소금과 빛은 사회에 대한 사도들의 사명을 설명한다.  참는 의로운 행동과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밝히는 것이다. 보존능력이 있고, 사람생활에 필수적이며, 음식에 맛을 돋구는 소금은 종교적이며 희생적인 의미(에즈라 6:9, 민수기 2:13, 에제키엘 43:24)를 갖고 있다. 소금은 언약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민수기 18:19). 소금을 함께 먹는 일은 충성심으로 단합하는 의미도 있다.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소금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언약을 보존하며 사회에 합당한 사역을 행하는 것이다. 빛은 참 진리이신 하느님 그리고 창조되지 않은 신성한 빛의 상징이다. 구약성서에는 빛이 하느님(이사야 60:1-3), 신성한 율법(시편 119:105), 혹은 이방인들과 분리된 이스라엘을 상징했다. 신약성서는하느님의 아들이 (요한1:4, 5, 9:1, 요한1 1:5)으로, 그리고 세상의 빛 (요한 8:12)로 불였다. 사물을 밝게 보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삶에도 빛은 요긴하다. 믿음의 삶은 신성한 빛에 의존되며(로마서 13:12, 에페서 1:18) 빛의 자녀(루가 16:8)로 인도하는 계시를 밝게 보는 데도 빛은 필요하다. 소금과 빛에 대한 하느님의 지혜를 갖고 사악한 세상에 빛을 밝히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하느님 나라의 정의 (마태오 5:17-20)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5:17 예수는 직접 행동과 언어로 율법을 다음의 방법으로 실현한다. ) 완전하게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 ㄴ) 율법의 일점일획에도 엇긋남이 없다 (요한 8:46, 14:30) ) 율법의 예언에 완전한 실현을 이루다 ㄹ)율법의 목적인 정의를 이루다 (로마 3:31, 8:3,4; 10:4). 예수는 예언자들이 예언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실현시킨다.

5:18 진실로 의 의미는 아멘의 뜻을 갖으며, 그되로 이루어 진다, 아니면, 진실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용어로 예수는 언약을 확언하며 권위가 있음을 확인시킨다. 은 그리어와 히브리어의 가장작은 글자이다. 율법의 전체적 예언은 새로운 가르침의 원천이 된다.  이러한 율법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되고 일점 일획도 모든 것이 성취될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마르코 13:31, 루가 16:17).

5:19 율법에 의하면 정의로움은 일체성을 포함한 전체성을 의미한다.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지키는 것은 가장 큰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어기는 것은 큰 계명을 어기는 거와 같다. 실행없는 가르침은 교사에게는 저주이다 (로마서 2:21). 이웃에게 안내가 되지않는 옳은 행위는 의로운 사람이 받는 보상을 줄인다. 예수는 가르치시기 전에 행위을 먼저 보이셨다. 그러므로 이웃을 바로잡아 주기전에 먼저 옳은 일을 한 후에 이웃을 가르쳐야 한다.

5:20 정의로움은 합당한 행위이상의 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거룩한 사고(생각)만을 주장해 왔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중심을 둔다(로마서 1:17, 3:26).

 

화해하여라 (마태오 5:21-26)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 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둘었다. 22)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24)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 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 와 예물을 드려라. 25)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게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형리에게 내 주어 감옥에 가둘 것이다. 26) 분명히 말해 둔다. 네가 마지막 한 푼가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27) “’간음하지 말라 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29) 오른 눈이 죄를 짓거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또 오른손이 죄를 짓거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31) “’또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면 그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 또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그리고 주님게 맹세한 것은 다 지켜라 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슴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행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예루살렘은 그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나 검게 할 수 없다. 37) 너희는 그저 할 것은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고 하신 말슴을 너희는 들었다. 38)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 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7)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8)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5:21,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말씀하심은 예수의 권한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느님 아들은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일하시며 인간본성을 창조하셨고, 구약의 율법을 제시하셨다. 구약의 율법이 신약에서 이루어 졌듯이 인간본성도 그리스도에 의해 치유되었다. 예수는 죄악된 분노는 금한다(시편4:4, 에베소서4:26의로운 분노는 죄가 아니다-). 살인성이 있는 분노는 죄악이다. 중앙법정은 유대인들의 최고행정기관이다. 지옥(10:28)은 하느님의 은총을 거역하는 죄인의 막판심경이다.

5:23, 24 이웃형제와의 평화유지는 경배의 의무보다도 더 중요하다(마르코 11:25). 초대 기독교인들의 예배에서 평화의 입맞춤 예식은 영성체가 시작될 즈음에 이루어지며, 화해와 용서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성체 전에 이루어져야한다. 이로써 교회는 성체성혈성사를 베풀고 받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고린도 전서 16:20, 베드로 1 5:14).

5:25, 26 루가복음 12:57-59절에서는 이대목을 말세를 다루는 데에 사용하지만 마태오복음사도는 화해에 적용한다. 중요한 것은 다툼은 신속히 풀어 해결야해된다는 것이다. 지속되도록 나두어서는 않된다. 화해와 착한행위를 미루는 것은 더 악한 일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에페소서 4:26,27)

5:27, 28 하느님은 인간행동으로 실천시키는 감추어진 욕망을 알고 계신다. 주제는 하느님께서 남여에게 부여하신 상호호감이라기 보다 음욕에 있다. 죄는 인성에서 온다기 보다 내적 자아충동에서 기인한다. 음욕을 즐기는 그 자체는 생각을 거처 마음속에서 행해지는 죄를 낳게 된다. 타성으로 생각을 거처 마음속으로 들어 오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 유혹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마음속에서 즐기거나 동의할 경우에만 죄가 된다.

5:29 예수는 문체보다 더 확실한 실례, 즉 육체적 부분을 들어 설명한다. 눈을 빼는 것 자체는 창조주를 비난하는 것과 같다(해설 18:8, 9참조).

5:31, 32 모세 율법에 따라 이혼을 허용하는 것에 반해, 예수는 이를 반대하고, 영구한 혼인의 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불결을 전제로한 이혼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혼인의 결속은 완전하지 않은 것이며, 그 이유는 죄로 말미암아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교회는 불행한 파혼이 생기게 되면 올바른 관계유지 성격으로 이혼을 허용한다. 인간 자유는 언제든 죄지를 가능성을 갖고 있다. 죄는 남편과 아내 사이를 갈아 놓을 수 있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과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성적불결은 혼인성사에 최악의 죄이다.

5:34-36 예수는 하느님 이름을 경솔하게 부르는 것을 못하게 하고 형식적인 언약을 맺는 것을 금한다. 이는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맹세하므로 자신을 이에 억메이지 않게할 뿐만아니라, 진실을 말하며 약속한 것을 지킬 것을 뜻하고 있다.

5:37 이는 신약성서에서 잘 알려진 구절이다 (야고보서 5:12). 신임은 , 아니요,를 넘어서는 언약보다 더 바람직한 것이다. 내면적인 충실함이 중요하다. 예수는 현 시점의 간결한 삶을 살아갈 것을 희망한다.

5:39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출에굽기21:24, 민수기24:20 신명기19:21에 반하는 말씀이다). 악과 악한 사람은 선으로 이길 수 있다. 이는 분노에서 해방시켜주고 파괴적이고 사악한 악의 독약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선한 인내의 행위는 이웃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과 적을 하느님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 교훈은 시민을 보호하고 죄수에 형벌을 선언하는 국가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5:44-47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은 하느님 나라의 참된 삶의 표현이다. 미움, 슬픔 그리고 분노에서 자아를 해방시키는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 완전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역사로 얻을 수 있는 선물로써, 만인에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런 사랑은 원수를 축복하고, 선행과 기도를 베푸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징표가 된다. 사랑은 감정의 표현만은 아니다. 이는 거룩한 은총, 창조되지 않은 능력에서 오는 것으로 영혼에 정열을 솟아 부어 하느님과 일치케 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한다(요한 1 4:7-21참조).

5:48 하느님의 기본성격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일괄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완전함을 향하여 올라가게 된다(에페소서 4:13, 베드로 후서 1신화 참조). 그리스도는 우리의 안내자이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실제 삶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는 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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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 나창규 (다니엘) 대신부

        성 바울로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