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암브로시오스 한국 정교회 대주교 부활절 메시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껏 이 세상에 전해진 소식 가운데 가장 기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 몰고가는 죄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가 선언하듯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습니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고린토Ⅰ 15:54-55)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물리치셨고” 당신의 부활로 인류를 멸망에서 해방시키셨으며, “온 세상에 불멸의 생명과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토요일 만과, 4조 스티히라)
첫 피조물들의 타락 이후 생겨난 질병과 죽음은 마치 ‘독성이 있는’ 바이러스처럼 삽시간에 온 인류에게 퍼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가난한 이들의 오두막이든, 왕들의 궁전이든 차별없이 똑같이 파괴”시키고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이 질병과 죽음을, 당신의 십자가 희생과 영광스러운 부활로 종식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뿌리인 죄를 쳐내심으로써 이를 종식시키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한 가지 특징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많이 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무신론자라 하거나 종교가 없다고 하고, 안타깝게도 공개적으로 하느님을 공격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현상의 원인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다른 어떤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스스로가 ‘전능하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단지 버튼 몇 개만 누름으로써 많은 것을 쉽게 해낼 수 있기에, 가히 자신이 ‘전능하다’고 믿게 되었고, 하느님의 존재와 도움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는 바이러스가 나타나, 우리 인간들이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나약한 존재임을 상기시킵니다. 바이러스 하나가 불과 며칠 만에 전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상황들을 모두 뒤집어놓았고, 앞으로는 아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이전 시대, 이후 시대’라고 구분지어 말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정에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시편 8:4)라고, 시편 작가가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숙고하며 의문을 갖는 것도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천사들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도록” 창조되었고 “하느님께서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주셨”(시편 8:5 참조)기에, 자신의 약함과 유한성을 뛰어넘어, 창조주께서 만드신 대로 다시 강하고 불멸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회개하는 마음과 신뢰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손에 맡길 때에 가능해집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여전히 죽음을 맞지만, 우리는 죽음을 초월하여 불멸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는 연약할지라도,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기에 (마르코 9:23) 동시에 강합니다. 우리는 무력한 존재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강하고, … 악마를 이겨냈”습니다. (요한Ⅰ 2:14 참조) 우리는 지상에서 살아가지만, 하늘나라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만군의 주님”이십니다. 악마가 온갖 수를 써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할 때, 우리는 단단한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노래합시다. “만군의 주님이시여, 우리와 함께 하소서. 고난의 시대에 우리를 도우실 자 주님뿐. 만군의 주님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또한 우리 교회에서 드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도를 계속 되풀이하면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선언합시다. “… 주는 우리 하느님이시며 주 외에 다른 이를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우리가 부르는 것 또한 주의 이름이로소이다. 믿는 이들이여, 모두 와 그리스도의 거룩한 부활을 흠숭할지어다. 그로 말미암아 십자가가 온 세상에 기쁨을 가져왔도다. 언제나 주를 찬미하고 주의 부활을 찬송할지어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피시디아의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과 모든 성직자들, 그리고 주님 안에서 협력하는 모든 이들의 부활 인사와 사랑의 안부를 전합니다. 분명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고통스럽고, 우리 영혼을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두려움을 거두실 거라는 믿음을 가집시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로마 8:3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한없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의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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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바르톨로메오스 세계총대주교 부활절 메시지
새 로마-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자 세계총대주교인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스는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와 자비가
정교회의 모든 신자들에게 임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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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우리는 부활절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기쁨의 참여자가 되어,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고 아담의 후손을 함께 부활시키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낙원의 문을 여신 영광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의 화려한 부활은, 분명하게 세상 생명의 주관자가 죽음이 아니고, 죽음의 세상을 무너뜨린, 처음에는 육신이 없는 말씀이셨다가, 우리를 위해 육신을 취하시고, 사람으로서 죽으셨다가 하느님으로서 부활하셔서 하느님의 섭리를 완성하기 위해 영광 속에 다시 오실 구세주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활의 신비와 체험은 교회적 삶에서 핵심입니다. 찬란한 예배들, 거룩한 성사들, 기도의 삶, 금식, 수련, 사목적 봉사 그리고 세상에 좋은 증거자가 되는 등, 이 모든 것들은 부활로 인한 기쁨의 향기를 발산합니다. 교회에서 신자들의 삶은 매일이 부활절, “위로부터 오는 기쁨”, “구원의 기쁨” 그리고 “기쁨 같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성 대주간의 예배들은 슬픈 애도의 예배가 아니며, 부활이 주는 승리의 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예배들에서 드러나 나타나는 것은 세상과 인류의 구원 계획에서 십자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라자로의 부활토요일에서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친한 친구가 죽음에서부터 부활한 것은 “공동 부활”의 본을 예견한 것입니다. “오늘 나무에 달리셨도다.”라는 찬양은 “주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우리에게 나타내소서.”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나는 당신의 수난을 찬양하나이다. 당신의 부활과 무덤에 영광 돌리고 찬송드리나이다.”라고 에피타피온 예식에서 찬양합니다. 그리고 부활절 예식에서는 “십자가가 온 세상에 기쁨을 가져왔도다.”라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큰 소리로 선언합니다.
부활의 “선택되고 거룩한 날”은 “여덟 번째 날”의 여명이고,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고, 우리 자신의 부활의 경험이고, “나의 구원의 경이로운 기적”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을 당하시고 죽음에까지 이르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시고 “우리를 위해 영원한 부활을 보장하신” 것은 살아있는 확증입니다. 부활절 기간 동안, 사람을 종에서부터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게 해주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인류학적 의미는, 비교될 수 없는 시적 표현으로 찬송되어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 구원은, 세상에서 신성한 감사의 성사의 모습으로 역동적으로 확대된 것과 같이, 최후의 왕국에서 신성한 사랑의 궁극적 표현의 충만함의 이미지가 되기 위해, 교회 안에서 새롭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은 사도들의 모본에 따라 “땅 끝까지” 복음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앞으로 올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요한묵시록 21:4) “새로운 창조”에 대한 기대와 은혜의 실질적인 증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우리 자신의 공동 부활에 대한 믿음은 세상의 삶에서 죽음과 고통 그리고 십자가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믿음과 심리적 범위를 통해 가혹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안심시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삶이 삶의 전체가 아니고, 우리는 “여행자”로서 그리스도께 속해있고, 주님의 영원한 왕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죽음의 존재는, 손에 잡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극단적인 현실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죽음의 분명한 폐지입니다. 하느님의 왕국에는 고통도 죽음도 없고 끝없는 생명이 있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 전에는 죽음은 사람에게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영광스러운 수난 후에는 사람이 죽음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라고 우리는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시련을 견딜 인내와 참을성과 힘을 줍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병을 치료해주시고,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분이며,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라는 것과, 하느님의 자애는 진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러한 신성한 사랑의 음성은, “안심하여라.(용기를 가져라)”(마태오 9:2)라고 중풍병자에게, “안심하여라.(용기를 가져라)”(마태오 9:22)라고 하혈병을 앓던 여인에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라고 주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리고 “용기를 내어라”(사도행전 23:11)라고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로가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 감옥에 있을 때, 울렸습니다.
지금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는, 우리 사람이 얼마나 취약한지, 두려움과 낙담에 의해 얼마나 쉽게 지배되는지, 우리의 지식과 우리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보여주었고, 또한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에 맞는 한 사건이며 죽음에 대해 올바르게 대처하려면 죽음을 망각하고 반감을 가지면 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사람이 죽음을 실제로 무적이고 극복할 수 없는 경계라고 생각할 때는, 자신의 존재를 단호하게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한계상황은 보여줍니다. 영원에 대한 희망 없이는 인간으로 남아있기가 어렵습니다. 이 희망은 고통 받고 있는 형제들을 지원하고 있는 모든 의사들, 간호사들, 자원 봉사자들, 기부자들의 마음에 희생정신, 자기희생, 사랑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위기에서 그들은 부활과 희망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험 속에서도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주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며, 환자들의 골고타에 함께하는 현대의 “키레네 사람”입니다.
주님 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여러분, 이러한 생각들과 함께, 당신의 빛으로 생명을 제공하고, 부활의 빛으로 온 우주를 기쁘게 하신, 모든 것을 초월한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생명과 부활을 주시는 영혼과 육신의 의사이신 주님께서, 인류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시고, 당신의 온전한 자애로 귀중한 선물인 건강을 우리들에게 주시어,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길 간청합니다. 이 자유는 하늘왕국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완전함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 대한 기원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열렬히 탄원하면서
2020년 거룩한 부활절에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의 세계총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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