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Philoptochos Pilgrimage to Turkey
2018 성 바울로 성당 부인회 순례여행
"2018년 7월 10일~7월 20일"

2018년 7월 10일부터 7월 20일 까지 10일 동안 인천 성 바울로성당 부인회 10명이 터키로 순례여행을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이번 일정은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성당, 총 대주교청 및 조오도호스 삐기 수녀원을 비롯해서 소티리오스 피시디아 대주교님께서 관할하시는 피시디아 지역을 중심으로 순례 일정이 이루어 졌습니다.  
피시디아에서의 여행은 저희들에게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 이였습니다. 
먼저 성 사도 바울로께서 선교하신 피시디아의 안디오키아 유적지에서 이루어진 야외 성찬예배에 참석에 참석하였으며,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께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지역인 안탈리아 지역의 성 알리피오스와 성 바울로성당에서 총대주교님과 소티리오스 대주교님,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을 모시고 함께 성찬예배를 함께 올릴 수 있는 축복된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성 알리피오스와 성 바울로 성당은 낡고 오래된 옛 성당건물을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께서 매입하셔서 여러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복원 하셨기에 매우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께서 직접 세우신 알라냐 지역의 피시디아 성모님 성당에서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을 위한 구순잔치가 있었습니다.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을 위해 본 고장에 살고 계신 많은 교인분들 께서 준비해주신 풍성한 음식과 문화행사에 저희도 함께 참석하며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으나 중간 중간에 방문했던 이스파르타 지역의 성모님 성당, 에이르디르에 있는 자선치료자 성당은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으나 지금은 사정상 닫혀있고 보수가 되지 않아 낡은 상태로 장기간 보존되었기 때문에 옛 성당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어서 많은 아쉬움이 남겼습니다.
끝으로 방문한 미라지역의 성 니콜라스 성당(지금은 유적지로 남아있으며 성찬예배를 볼 수 없음)은 우리와 너무나도 친숙한 성인의 성당이기에 많은 기대를 갖고 방문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성당 내부에 그려져 있는 비잔틴 성화뿐만 아니라 성당의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많은 위로받았습니다. 
이번 순례여행을 통해 우리만의 새로운 순례길을 발견하게 됨에 감사드리며, 여행일정 내내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신 소티리오스 대주교님,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과 아가티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Pilgrge Schedule of St. Paul Orthodox Church's Ladies group to the Metropolis of Pisidia in Turkey
(2018. July 10. thru 2018. July 20)

터키 성지 순례 일정표
(2018년 7월 10일 ~ 2018년 7월 20일)

7월10일(화) July 10th : Incheon Airport' Departure to Constantinople:
오후 4시 10분 터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도착 (OZ551 아시아나 항공) (인천 –> 이스탄불 11시간 10분)
오후 6시 30분 호텔 도착(가까운 곳에서 산책 및 저녁식사) (공항->호텔 25분)
Feronya Hotel 숙박
(개인 저녁식사)
7월 10일 호텔에 도착하면 단체버스는 7월 11일 다시 옵니다. 오후에는 호텔 리셉손에 있는 분이 이스티클락 거리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십니다. 이스티클락 거리를 가서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사서 먹을 수 있습니다.

7월11일(수) July 11th : Constantinople City Tour and Departure to Antalya:
오전 8시 아침식사
오전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스탄불 도시 유적지 방문 (성 소피아 대성당, 조오도호스 삐기 바루끌리 수도원<기적을 많이 일으키는 성수물이 있는 곳>, 총대교구청 성당 방문, 박물관 등)
오후 5시 10분 이스탄불 국제공항에서 안탈리아 Antalya 로 출발 (국내선 이용 1시간 10분)
오후 6시 30분 안탈리아 공항 도착
에이르디르 Egirdir 지역으로 이동 (안탈리아 공항 -> 호텔 2시간 130km)
에이르디르 Egirdir 지역 Altingol Hotel숙박
(개인 점심 식사 및 교구청 방문 성찬예배복장)
7월 11일 일찍 아침 식사를 호텔에서 하시고 오전 8시에 가방을 준비해서 리셉손에 모입니다. 호텔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요르고스 까네토스 가이드가 기다리고계실것입니다. 우선 세계 총대주교청을 방문합니다.(담당 신부님께 연락해 놓은 상태) 블라헤르논 성모님 성당,유명한 그리스 학교 건물, 성 소피아 성당, 바루클리 수녀원(조오도호스 삐기 수녀원, 가 보셨던 수녀원, 성수물 나오는 곳), 킨스테르나, 보스포로 해변가 등 점심 식사가 가능한 식당으로 안내.(호라성당은 문이 열리지 않는 날이라서 방문이 불가능합니다.) 오후 4시에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오후 5 시 10분 안탈리아로 출발. 안탈리아 국제공항에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님, 아가티 수녀, 예나디 러시아인과 하나 운전사님,(터키 정교인)이 기다립니다. 버스를 타고 3일동안 있을 Altingol Hotel 호텔로 다 같이 출발합니다.

7월 12일(목) July 12th : St. Peter and Paul's Feastday' Divine Liturgy at Antioche of Pisidia:
오전 7시 30분 피시디아 Pisidia에 있는 안디오히아로 Antiochia in Pisidia출발 (에이르디르 –> Antioche of Pisidia 1시간10분 74.7km)
성찬예배 참석(구달력으로 성 바울로 축일)
성찬예배 참석 후 안디오히아 지역 유적지 방문
안디오히아 Antiochia in Pisidia박물관 방문
피시디아 Pisidia 에 있는 이스파르타 Isparta 로 출발 (Antioche of Pisidia –> 이스파르타 성모님 성당 1시간 40 분 113km)
이스파르타 성모님 성당(Aya Panagia Greek Orthodox Church) 방문
장미 향수 등 쇼핑
오후 에이르디르 Egirdir 지역 Altingol Hotel 숙박 ( 성당 –> 호텔 36분 39km)
(성찬예배 복장)

7월 13일 (금) July 13th : Departure to Egirdir Island and Festival Great Vespers:
오전 아침식사 후 사갈라수스 Sagalassos 출발 (기원전 5세기에 해발 1700미터 세워진 고대도시 방문) (호텔 –> Sagalassos 1시간 30분 82km)
Egirdir로 출발 (사갈라수스 –> 호텔 1시간 30분 82km)
오후 6시 에그기딜 Egirdir 섬(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곳은 아님)에 있는 자선치료자 성당에서 축일 대만과 및 축하행사
에이르디르 Egirdir 지역 Altingol Hotel 숙박 (자선치료자 성당 -> 호텔 5분)
(개인 점심 식사 / 오후 성찬예배복장)

7월 14일(토) July 14th : Openning Door Ceremony of the Holy Unmercenaries Church with the Divine Liturgy officiate by His All Holiness Patriarch Bartholomew.
오전 8시 에이르디르 Egirdir 섬에 있는 자선치료자 성당 문 여는 예식 및 총대주교님 집전 성찬예배 와 축일 오찬 (호텔 –> 자선치료자 성당 5분)
오후 6시 성 알리피오스와 성 바울로 성당에서 피시디아와 모든 성인들 축일 대만과 및 축일 만찬 (Altingol Hotel 호텔 –> 성 알리피오스 성당 2시간 30분 142km)
안탈리아 Antalya Kaleici Hotel Antalya호텔 숙박 ( 알리피오스 성당 –>호텔 걸어서 1분)
(개인 저녁식사 / 오전에 한복으로 예배, 및 한국어 성가 부르며/ 축일 오찬에서 민요 )

7월 15일 (주일) July 15th : His All Holiness' officiated Divine Liturgy at Sts Alipios and Paul Church and Holy Water blessing for the Pisidia Metropolitanate Office.
8시 조과
안탈리아 성 알리피오스와 성 바울로 성당에서 오전9시 총대주교님 집전 성찬예배 , 총대교주교청 산하 주교 직무실 성수식, 만찬 및 축일행사 (호텔 >알리피오스 성당 걸어서 1분)
안탈리아 국립 박물관 방문, 재래시장 쇼핑 (호텔->박물관 15분)
안탈리아 Kaleici Hotel Antalya 숙박
(개인 저녁식사 / 오전 한복으로 예배, 축일 행사에서 노래를 하면 전날 한 노래와 중복 되지 않도록 )

7월 16일 (월) July 16th: Departure to Perge where St. Paul the Apostle preached and visit Alanya where the Great Vespers officiate for the Feastday of St. Marina.
오전 8시 아침식사
오전 9시 페르기(perge)로 출발 (사도 바울로의 첫 전도 사업 여행 때 선교한 지역들) (Kaleici Hotel –> 페르기 10분 3.9km)
아스펜도스 Aspendos 고대 야외 대형연극관 관람(페르기 –> 아스펜도스 20분)
시데 side (성당으로도 사용되었던 고대 야외 연극관 관람) (아스펜도스 –> 시데 1시간 70km)
오후 6시 알라니아 Alanya 지역 도착 (시데 –>알라니아 1시간 64km)
성모님 성당(alanya orthodox)에서 성 마린나 축일 대만과 (성당 – 호텔 30분)
알라니아 Xperia Grand Bali Hotel 숙박
(개인 점심 식사 / 오후 대만과 성찬예배복장)

7월17일(화) July 17th : Divine Liturgy at the Metropolitanate of Pisidia's Church, St. Mary followed by the celebration of the 90th Birthday of His Eminence Metropolitan Sotirios of Pisidia.
오전 8시 피시디아의 성모님 성당에서 조과 및 축일성찬예배 및 (호텔 -> 성당 30분)
성 마린나 축일 및 소티리오스 대주교님 구순 생신 축하 공연/오찬
오후 알라니아 Alanya 의 옛 성벽 방문<11세기 비잔틴 성당 방문, 동굴 및 박물관 방문> (hotel -> 박물관 10분)
안탈리아 Kaleici Hotel 숙박(알라니아 -> 안탈리아 2시간 10분 136km)
(개인 저녁식사 / 오전 한복 축하공연 같은 음악으로 해도 됨)

7월 18일(수) July 18th : Visit to St. Nicholas of Myra Church.
오전 안탈리아 Antalya
미라 Myra 지역 (성 니콜라스 성당 방문) (안탈리아 –> 미라 2시간 40분 144km)
오후 주변 산책 및 휴식, 자유시간
안탈리아 Kaleici Hotel 숙박
(개인 점심 + 저녁 식사)

7월 19일(목) July 19th : Departure to Constantinople and Seoul, Korea.
안탈리아 호텔에서 11시 30분 출발 (호텔 -> 공항 25분)
이스탄불 국제공항 오후 1시 50분 도착
오후 5시 30분 이스탄불 공항 출발
(개인 점심 식사)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그리스어: Οἰκουμενικὸν Πατριαρχεῖον Κωνσταντινουπόλεως)은 동방 정교회의 14개 독립 교회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수장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옛 동로마 제국의 수도라는 역사적 위치와 오늘날 대다수 정교회들의 어머니 교회로서의 역할 때문에 동방 정교회에서 특별히 명예로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세계 동방 정교회 수석 주교들 중에서 동등한 가운데 첫 번째(Primus inter pares) 위치를 누리며 전세계 3억 명의 동방 정교회 신자들의 대표자이자 영적 지도자로 널리 존중 받는 세계 총대주교의 주교좌 역할을 맡고 있다.
세계 총대주교청은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동방 정교회 교리를 수호한다. 그리고 세계 총대주교들은 교회 일치 운동과 종교 간 대화, 구호 활동, 정교회 전통 수호에 관여한다. 21세기 세계 총대주교청의 주요 쟁점 사안으로는 중동에 있는 정교회 신자들의 안전과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해, 1971년 터키 정부에 의해 폐교된 할키 신학교 재 개설 등이 있다.

아기아 소피아
아야 소피아 또는 아기아 소피아(그리스어: Αγία Σοφία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동방 정교회와 대성당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성 소피아 성당은 높이가 56m, 동서의 폭은 31m, 남북의 폭은 33m로서 내부에 들어가 보면 이 건물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건물은 기둥이 떠받치는 구조로 되어있지만 이 건물만은 그렇지 않다. 천장에서부터 반구 형태의 지붕이 서로를 떠받치는 15층 높이의 거대한 둥근 돔(Dome)이 있고, 그 둘레에 40개의 창문이 있고, 아름다운 모자이크 성화들이 장식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가장 완벽하게 조화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는 이 건축양식은 현재의 건축기술로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다고 한다.
537년에 1453년까지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다. 다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라틴 제국에 의해서 점령된 1204년부터 1261년까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개조됐다. 1453년 5월 29일부터 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했다
로마 제국의 건물이라고 하여,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크며, 500년 가까이 이슬람교 신자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성당 옆에 있는 4개의 탑들은 미나레트라고 부른다.
아기아 소피아는 원래 정교회 대성당이며, 교회는 360년, 이스탄불이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렸을 때,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이 정교회 대성당이 이때부터 아기아 소피아로 불리게 되었는지, 훗날의 재건 때부터 아기아 소피아로 명명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최초의 정교회 대성당은 목조 지붕을 가진 바실리크였던 것 같지만, 오늘날에는 그 위치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404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성 크리소스톰)를 추방 시키는데 수반된 난동으로 교회가 소실되어,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재건,415년에 축성되었다. 이 대성당도 현재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바실리카이며, 현재에도 일렬의 원주와 주기, 장식된 대들보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정교회 대성당도 532년 1월 13-14일 니카의 반란 도중 일어났던 대화재로, 황궁의 일부나 성 이레네 성당과 함께 다시 소실해 버린다. 두 번의 소실을 겪은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즉위 후 소피아 정교회 성당의 재건을 결정하여, 그 설계를 안테미오스와 이시도로스에게 맡겼다. 공사는 5년 11개월이라고 하는 단기간에 종료되어, 537년 12월 27일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맞이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메나스 총대주교에 의한 헌당식을 거행했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왕 솔로몬의 신전을 능가하는 교회를 세웠다는 생각을 하여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 했도다!” 라고 외쳤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서 재건된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의 소재지로서 동방 정교회 제일의 격식을 자랑하였으며, 또 동로마 제국의 황제의 사당으로서 이용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한 순례자들의 기록을 보면, 대성당 안에는 현재는 없어진 시설이나 성유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4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한 러시아인 스몰렌스크의 이그나티오스의 기록에서는, 대성당 내부에는 많은 예배당이 설치되어 있으며 노아의 방주의 문이나 성 십자가, 아브라함의 테이블 등 많은 성유물들이 안치되어 있었다. 또, 이 시대에는 근처에 총대주교구의 자택이 병설되어 있어, 현재는 출입구가 되어 있는 부분은 총대주교 자택으로 통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남서부의 도시 안탈리아(Antalya)로부터 북쪽으로 186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터키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이다. 담수호로는 두 번째로 크다. 예전에는 에이리디르(Eğridir)가 공식명칭이었다. 그리스어의 아크로티리(Akrotiri)를 터키식으로 발음한 것인데, ‘구워지다’ 라는 의미가 있다. 1980년대에 그 말의 부정적인 인상을 없애기 위해 에이르디르(Eğirdir)라고 명칭을 변경했다. 철자의 i와 r의 위치를 서로 바꾼 것이다. 이 새로운 이름은 ‘꽃’ 또는 ‘회전(回轉)’ 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여전히 옛 이름을 많이 사용한다. 해발 900m의 고원지대다. 짙푸른 호수 물빛과, 도로로 이어져 가늘고 긴 반도처럼 보이는 작은 섬인 ‘예실아다(예쉴라다) 섬’ 풍경 등 경관이 아름다워 사철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호수다. 호숫가 에이르디르 마을엔 오래된 집들과 사원 등 유적, 식당·펜션 등이 즐비하다. 호수 남서쪽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호수 경관을 즐기며 식사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방갈로식 식당(악프나르 이외뤼크 차드르)이 있다.

성경에는 안티오키아란 지명이 두 곳 나온다. 한 곳은 시리아 지역의 안티오키아이고 다른 한 곳은 피시디아 지역의 안티오키아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는 오늘날 터키 중부의 얄바취(에스파르타 지방)에서 동쪽으로 약 3.2㎞ 떨어진 곳이다. 지금은 과거의 흔적만 남아 있는 페허지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의 유적은 매우 넓어 지금도 계속해서 유적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도시는 자연적 요새로서 잘 보호돼 있는 고원 위에 형성되었다. 2만 5000여 명 정도의 소도시 얄바츠 동쪽 1km 지점에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의 유적지가 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는 셀레우코스 왕조를 창시한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재위 B.C 301~280)가 기원전 301년 세운 도시였다. 자기 아버지 안티오코스의 이름을 따서 안티오케이아로 명명했다. 그런데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곳에 로마군을 주둔시키고 로마인의 거주지로 삼았다. 안티오키아는 약 200년간 로마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였다.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으나 시민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극소수만이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이 기름지고 생활환경이 좋아 토착민과 이주민들이 섞여 살았다. 그러다 8세기 초 아라비아인의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성경에서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는 바오로 사도와 연관이 깊다. 바오로는 45~58년경 지중해 동부지역에서 세 차례 선교여행을 했다. 바오로 사도는 제1차 전도 여행 때(45~48년경) 페르게에서 안티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고니온, 리스트라, 데르베에서 전도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페르게에 도착해 곧바로 안티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로 갔고, 이곳 회당에서 두 차례 안식일을 지내며 먼저 유다인들에게 선교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는 원주민 외에 그리스인들과 유다인들과 그들의 회당이 있었다.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사도 13,14) �그러나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배척당하자 이방인들을 상대로 선교했다.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사도 13,46) 유다인들과 달리 이방인들은 바오로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의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대 유력자인 헬라인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하였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하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사도 13,50) 그래서 바오로 일행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를 떠나 이코니온으로 갔다.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를 떠날 때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떠난다.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사도 13,51) 발에서 먼지를 털어내는 행위는 제자들을 배척하는 그 고을에 속한 것이라면 먼지까지도 떨어버림으로써 그 고을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성 알리피오스 성당
<안탈리아 국립박물관>
터키의 대형 박물관 중에서도 이곳은 고대 문화가 전하는 스토리텔링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유물 수 천 점을 간직한 곳이다.
안탈리아 박물관은 13개 전시실에 걸쳐 5,0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 터키 최대의 박물관 중 하나다. 터키의 수천 년 인류사와 자연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물 수천 점이 엄청난 규모의 건물에 전시되어 있다. 13개의 전시실을 거닐며 이 지역의 과거 면모를 보여주는 다양하게 관람할 수 있다. 안탈리아 박물관은 교사인 술레이만 피크리 에르텐에 의해 1922년 설립되어 1988년에 유럽이사회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박물관은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늦게까지 문을 열며 소정의 입장료가 있다. 안탈리아 박물관은 안탈리아 도심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안탈리아 남쪽 해안가를 따라 3.6km(2마일) 떨어져 있으며, 인근에는 비치 파크와 안탈리아 수족관이 있다.

터키 남서부 이스파르타와 부르두르 경계에 솟은 아크 산 서남쪽 자락(부르두르 지역)의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 유적지. 지금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원형극장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이스파르타, (터키어: Isparta)는 터키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이스파르타 주의 주도이며 높이는 1,035m, 인구는 222,556명(2010년 기준)이다. 주요 산업은 장미 향수 생산과 수제 융단 제작이며 "장미의 도시"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스파르타 시청 뒤 작은 광장엔 장미꽃다발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의 동상 하나가 서 있다. 터키에 장미를 처음으로 들여왔다는 이스마일 에펜디의 동상이다. 그는 1888년 불가리아에 다녀오는 길에 장미 꽃씨를 지팡이에 몰래 숨겨 가지고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익점 격인 인물이다. 이때부터 이스파르타 지역에서 분홍색 ‘로자 다마세나’ 품종이 재배되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모든 마을에서 ‘장미 농사’를 짓는다.
이 지역의 장미는 관상용이 아닌, 100% ‘장미오일’ 생산용이다. 이스파르타 주민이자 터키 서부 지중해개발공사 국제협력 담당자인 메흐메트 페흘리완은 “전세계 장미오일 생산량의 65%가 이스파르타에서 나온다”며 “장미오일의 95%를 프랑스 등의 유명 화장품 회사로 수출한다”고 말했다. 아나톨리아 남부에 동서로 뻗은 산맥이 토로스 산맥이다. 터키 동쪽 유프라테스강 상류에서 터키 남부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대부분 해발 3000m급의 고봉들로 이뤄진 이 산맥의 정상부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석회암 바위지대다. 석회암이 굳어져 생긴 변성암이 대리석이다. 토로스 산맥 남서부 일대 곳곳에, 무너지고 깨지고 금가고 닳아 빠진 아름다운 대리석 유적들이 무수히 깔려 있다. 터키 남서부 지중해 해안의 중심도시 안탈리아(안탈야)에서 북쪽으로 약 120㎞, 이스파르타와 부르두르 경계에 솟은 ‘아크다으’(하얀 산) 산자락에서 만난 사갈라소스 유적도 그중 하나다. ‘장미의 도시’ ‘호반의
고도’로도 불린다

아크다으(Akdağ)산 서쪽 경사면의 해발 1,450~1,700m 지점에 넓게 분포한 고대 유적지이다. 본래 소아시아(Asia Minor) 남서부 내륙의 고대 국가인 피시디아(Pisidia)의 도시 중 하나였으나 B.C.1세기에 로마령이 되었다. 2세기 경 전성기를 누렸으며, 4세기 무렵까지 군사 요새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518년에 지진으로 성벽이 무너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640년에 아랍의 공격을 받고, 또다시 지진 피해를 입은 뒤 폐허가 되었다. 12세기까지 은둔 수도사들이 거주했던 흔적은 남아있다. 현재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유적지에는 로마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138~161 재위)에게 봉헌된 신전, 2개의 아고라, 공회당, 원형극장, 도서관, 대형 분수, 공중목욕탕 등이 분포하고 있다
. 1706년에 탐험가 파울 루카스(Paul Lucas, 1664-1737)가, 1824년에 영국인 사제 아룬델(Francis Vyvyan Jago Arundell, 1780-1846)이 이 곳을 방문해 유적지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985년에 이르러서야 중요성을 인정받아 영국과 벨기에 합작 발굴단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으며, 현재도 발굴이 진행중이다
유럽의 모든 문명은 헬레니즘(그리스문명)으로 압축된다. 유적들이 다 비슷한 이유도 그래서다.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부터 예수 탄생 직전 로마의 이집트 병합까지, 그리스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이 몸을 섞은 소아시아 모든 도시의 행정적·문화적 단위는 폴리스였다. 로마에서도, 아테네에서도, 안탈리아 주변의 고대 도시에서도 그 뼈대는 마찬가지. 대중의 회합, 재판, 연극, 축제, 공연이 가능한 원형 극장, 머리카락을 태워버릴 것 같은 지중해 태양의 위력을 뼈저리게 동의하게 만드는 (태양신) 아폴론 신전, 현대의 시장 개념인 아고라, 온탕과 냉탕을 고루 갖췄다는 대리석 목욕탕, 대리석으로 지은 혹은 바위산에 새긴 석관묘…. 안탈리아를 중심으로 대략 차로 한두 시간 거리의 페르게(Perge), 아스펜도스(Aspendos), 시데(Side), 리미라(Lymyra), 사갈라소스(Sagalassos) 등 작은 도시들은 말 그대로 3000년~1만년 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시간 박물관이었다.

토로스 산맥(Taurus Mountains)과 지중해 사이의 작은 반도인 알라냐는 더 널리 알려진 안탈리아의 동생 격입니다. 오늘날의 현대적인 모습과 수많은 박물관은 이 도시가 수 세기에 걸쳐 겪은 침략의 흔적과 풍부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고학 박물관에서 A.D. 200 이후 만들어진 헤라클레스 청동상을 감상하거나 민족 박물관을 찾아 터키의 토로스 산맥 지대의 현지 문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해안에서 250미터만 가면 6.5km의 긴 성벽으로 둘러싸인 13세기 셀주크 시대의 알라냐 성(Alanya Castle)이 있다. 붉은 탑(Red Tower)으로도 불리는 키질 쿨레(Kızıl Kule) 역시 셀주크 시대의 건축물로서, 항구에 위치한 8각형의 이 탑은 13세기부터 군사 기지로 사용되었다. 자연 경관을 감상하려면 담라타스 동굴(Damlatas Cave), 해적 동굴(Pirates Cave)과 같은 근교의 수많은 동굴을 찾거나, 연중 차갑고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딤 계곡(Dim Stream)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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